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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횡설수설

[Fun] (신판) 허생전

by fermi 2003. 8. 17.
글쓴이    stonepc  
등록일    2002년 07월 07일 AM 05시 01분  
from - 루리웹(RULIWEB) http://ruliweb.intizen.com

新版 허생전

  허생은 강남 테헤란로에 살았다. 곧장 역삼역에 닿으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스타타워가 있고 스타타워 뒤 편으로 반 지하가 있었는데 월세는 너무 비싸서 여러 달을 밀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허생은 게임 하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곰 인형에 눈알을 박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의 처가 몹시 배가 고파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면접을 보지 않으니 게임만 해서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모든 게임을 다해보지 못하였소"

  "그럼 피시방 알바라도 못하시나요?"

  "피시방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용산에서 장사라도 못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 쳤다.

  "밤낮 게임만 하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요? 피시방 알바도 못한다. 용팔이 노릇도 못한다면 남의 계정 해킹해서 팔아먹기라도 못하시나요?"

  허생은 조작하던 마우스를 밀어 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게임만 하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칠 년인걸.."

  하고 문밖의 휙 나가 버렸다.

  허생은 게임 업계에 인맥이 거의 없었다. 바로 메가 웹 스테이션으로 가서 피시방 손님을 붙잡고 물었다.

  "어떤 게임 업체가 제일 크오?"

  엔씨(円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엔씨 본사로 찾아 갔다. 허생은 김사장에게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보려고 하니 10억원을 투자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사장은,

  "그러시오"

  하고 당장 10억 원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엔씨의 이사와 간부들이 허생을 보니 완전히 거지였다. 반바지의 숱이 빠져 너덜 너덜하고 샌들의 끈 창이 빠졌으며 꾀죄죄한 몰골에 온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런 법무 절차도 없이 10억원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입니까?"

  김사장의 말은 이랬다.

  "이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투자 받으러 오는 사람은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게임 업계의 인맥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은 중언 부언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 사람은 비록 형색이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돈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해보겠다는 사업이 작은 일이 아닐진대, 나 또한 그를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안주면 모르되 이왕 10억원을 줄 바에야 계약서는 써서 무엇 하겠느냐?"

  허생은 10억원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강남에 인력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강남은 게임 개발자들이 모두 마주치는 곳이오, 인력 이동이 활발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내노라 하는 회사의 유능한 개발자들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개발자들을 모두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게임 서비스를 제대로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안가 두 배의 값으로 개발자들을 빼앗겼던 회사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0억원으로 온갖 개발자들을 좌지우지 했으니 우리 나라 개발자들의 몸값을 알만 하구나"

  그는 다시 각 회사의 영자들을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달 지나면 모든 온라인 게임 서버들이 무법 천지로 변하게 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영자 몸값이 열 배로 뛰어 올랐다.

  허생이 늙은 사공을 만나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회사를 차릴 만한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태풍을 만나 서쪽으로 줄 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섬에 닿았지요. 아마 제주도와 대마도의 중간쯤 될 것입니다. 집집마다 인터넷이 들어 오고 피시방도 곳곳에 있어 사람들이 인터넷 환경에 해박한 편입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것일세"

  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피시방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속도가 10메가도 안 나오니 무엇을 해보겠는가? 인터넷 사용료가 싸고 사람들이 매너가 있으니 단지 상장기업은 차릴 수 있겠구나"

  "조그만 섬에 사람도 얼마 없는데 대체 누굴 고용해서 회사를 차린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돈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돈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을 근심 할 것이 있겠나?"

  이 때 인터넷의 구직란에는 수천의 게임 기획자들이 자리를 찾지 못해 우글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면접을 보고 회사를 들어가도 얼마 안가 망하기 일쑤였고 기획자들도 계속 되는 이직에 지쳐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기획자들의 우두머리를 찾아가서 달래었다.

  “수습 직원으로 들어 가서 세금 떼고 고용보험 비용 떼고 하면 한 명 앞에 얼마나 돌아가지요?”

  “일인당 90만원이지요”

  “모두 자금은 있소?”

  “없소”

  “사무실은 있소?”

  개발자들이 어이 없어 웃었다.

  “자금이 있고 사무실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취직을 한단 말이요?”

  “정말 그렇다면 왜 자금을 모으고 개발자들을 규합해서 창업을 하려 하지 않는가? 그럼 실업자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고 사장이 태클 걸까 걱정 않고 같이 완성 된 타이틀을 볼 수 있을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단지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게임 개발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 돈을 마련할 수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생이 기획자들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기획자들은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기획자들이 바닷가에 나와 보니 과연 허생이 300억원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사장님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짊어지고 가거라”

  이에 기획자들이 다투어 돈을 짊어졌으나 한 사람이 1억원 이상을 지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써도 1억 원을 못 지면서 무슨 게임 개발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가 평범한 유저가 되려고 해도 배워 먹은 것이 게임 기획뿐이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를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1억원씩 가지고 가서 프로그래머 하나, 그래픽 디자이너 하나씩 데려 오너라”

  허생의 말에 기획자들은 좋다고 흩어졌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년 먹을 양식과 기자재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기획자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고, 다들 배에 싣고 그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기획자들을 모두 쓸어가서 게임 업계는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작업 환경을 고려해서 사옥을 짓고 각자의 능력과 개성을 고려해서 팀을 구성했다.

  관리 프로세스가 온전하기 때문에 개발이 착실히 진행 되어 다른 업체처럼 수많은 버그 리포팅을 하지 않고도 1년에 두 개 이상의 대작을 개발해 낼 수 있었다. 향후 3년의 개발 계획을 수립해 놓고 개발해 놓은 대작들을 모두 일본에 갖다 팔았다. 마침 일본이라는 곳이 온라인 돌풍이 불어서 여러 업체와 계약을 맺고 1000억원을 얻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개발자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 먼저 관리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개발에 관해서는 따로 R&D를 해서 세계적인 개발 업체를 만들려고 하였느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시장이 척박하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단지 개발자를 뽑거들랑 반드시 출퇴근 시간은 엄수시키고 인센티브는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동등하게 지급되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간 말만 앞서고 일을 게을리한 자 들을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

  “이 회사에 화근을 없애야 하지”

  했다.

  허생은 나라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레벨 낮고 겜방비가 없는 초보 게이머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100억 원이 남았다.

  “이건 김사장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김사장을 보고,

  “나를 알아 보시겠소?”

  하고 묻자 김사장은 놀라며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10억 원을 다 날린 것 아니오?”

  허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기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어찌 10억 원이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100억 원을 김사장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게임 하기를 중도에서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10억 원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김사장은 대경(大驚)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 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용팔이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김사장은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스타타워 뒤로 가서 조그만 연립 지하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한 피시방 주인이 가게 앞을 청소하는 것을 보고 김사장이 말을 걸었다.

  “저 연립의 지하가 누구의 집이오?”

  “허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게임 하기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김사장은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김사장은 받은 돈을 모두 가지고 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 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1000억원을 버리고 10억원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 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월세나 밀리지 않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김사장이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김사장은 그때부터 허생의 집에 월세가 밀리거나 겜비가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 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 두 사람의 정의(情義)가 날로 두터워졌다.

  어느 날 김사장이 딴 이야기를 꺼냈다.

  “요새 콘솔 시장이 개방 되어서 한국의 여러 업체들도 개발에 나선다 하니 이럴 때야말로 능력 있는 개발자가 나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소? 우선, 손노리 이원술 같은 분은 국내 게임 업계를 통솔할만한 인물이었건만 로커스에 합병되어 죽어 지내는 형편이고, 소맥 디렉터 최연규 같은 분은 PS2 RPG를 만들만한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건만 마카 실패 이후 스포츠카나 몰면서 소요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열 개의 기업을 살만하였으나 전국의 게이머들에게 던져 버리고 온 것은 도대체 쓸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김사장은 한숨만 내쉬며 돌아갔다.

  김사장은 원래 문광부 남궁진 장관과 잘 아는 사이였다. 남장관이 콘솔게임 시장 개방을 맞아 이를 관리할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김사장이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남장관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상종해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 사람,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보세”

  밤에 남장관은 수행원들도 모두 물리치고 김사장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김사장은 남장관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남장관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설명했다. 허생은 못 들은체하고

  “당신이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키는 것이었다. 김사장은 남장관을 밖에 오래 서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남장관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남장관이 몸 둘 곳을 몰라 하며 노트북을 꺼내 파워포인트로 나라에서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는다.

  “밤은 짧은데 PT가 길어서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직책에 있느냐?”

  “장관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 받는 관료로군. 내가 구다라키 켄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대통령에게 말해서 발탁할 수 있겠느냐?”

  남장관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第二)라는 것은 모른다”

  라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남장관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많은 일본의 업체들이 한국 게임 시장이 커졌다고 하여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데 음비법 및 영등위의 각종 규제로 인하여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네가 그 법안을 모두 철폐하고 영등위를 해체할 수 있겠느냐?”

  남장관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세계 게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콘솔 플랫폼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되고 남의 나라에 진출하려면 그 나라 실정을 알지 못하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일본 국내에 한국 열풍이 부는데 편승하여 일본 게임 유저들에게 한국 온라인 게임이 인기가 높은 편이다. 이에 우리는 한술 더 떠서 일본 게임 소프트웨어 수입에 관한 완전 자유 시장 제도를 도입하고 게임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전 심의를 철폐하면 저들도 자기네에 친근 하려 함을 보고 반드시 기뻐 할 것이다. 많은 개발자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켜서 그 중 기획자는 가서 콘솔 게임의 기획을 배우도록 하고 또한, 마케터는 넓은 일본 시장에 건너 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진보 된 영업 전략을 배우게 한다면 한번 시장의 대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장관은 힘없이 말했다.

  “국내 개발자들은 온라인 게임이 최고인줄 알고 있는데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또한 영등위의 사전 심의를 철폐하는 것은 YMCA의 반대 때문에 불가합니다”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온라인 게임이란 것이 무엇이냐? 불법 복제의 대국에서 태어나 자칭 게임 강자로 칭하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원래 온라인 게임이 발전하게 된 것은 불법 복제로 PC 게임이 팔리지 않으니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요, 일본 콘솔이 이 땅에 인기가 없는 것은 1993년에 음비법을 제정하여 아예 시장을 막아버렸기 때문이 아니냐? 미야모토 시게루는 미국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직접 현지에 날아가 개발을 했고 테크모는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 X-BOX 진영에 참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콘솔 시장에 적극 진출하겠다고 하면서 그까짓 심의 과정 조차 못 고친단 말이냐? 내가 세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가지도 행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관료라 할 수 있는가? 신임 받는 관료라는게 정녕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딴지일보에서 특집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딴지일보에 전화를 걸려 했다. 남장관은 놀라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국내게임업계 현실풍자 `패러디 허생전' 화제>
[속보, 산업/기업, 생활/문화, 연예] 2003년 08월 15일 (금) 09:27

(서울=연합뉴스) 임화섭기자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ㆍ1737-1805)의 허생전(許生傳)을 패러디해 국내 게임업계의 현실을 풍자한 글이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1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신판 허생전'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세계시장의 대세인 콘솔 게임을 등한시하고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온라인게임 개발에만 몰두하는 게임업체들, 사전심의를 통한 규제에 혈안이 된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정부, 저임금에 시달리는 게임개발자들의 상황을 통렬히 풍자하고 있다.

"허생은 강남 테헤란로에 살았다."로 시작되는 이 단편 패러디소설에서 허생은 평생 게임만 하다가 처가 생활고를 호소하자 집을 나와 안면도 없는 게임업체 엔씨(円氏)의 김사장을 찾아가 10억원을 빌린다.

원작과 유사하게 허생은 전국의 게임 개발자들을 모조리 스카우트해 이를 도로 트레이드하는 수법으로 돈을 번 뒤 이를 기반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게임기획자들을 모아 조그만 섬에 회사를 차리고 게임을 개발, 일본에 수출해 1천억원을 번다.

이 패러디 소설의 후반부에서 허생은 돈을 빌려준 김사장에게 원금의 10배인 100억원을 갚고 원래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 하루종일 집에서 게임을 하는 데 몰두하던 도중 김사장의 주선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나 국내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3가지 계책을 제시하지만 장관이 난색을 표하자 화를 버럭 내고 사라진다.

지난달부터 퍼지기 시작한 이 글은 국내 최대의 게임웹진인 루리웹의 `프리토크' 게시판(http://ruliweb.intizen.com/data/freetalk/read.htm?page=1&num=5&left=b)에서 읽을 수 있으며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임관련 게시판과 유머 게시판들에도 복사돼 있다.

solatido@yna.co.kr

(끝)




허생전 원작

  작가 : 박지원
  연대 : 18세기 정조때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
  형식 : 한문소설, 단편소설, 풍자소설
  문체 : 번역체, 산문체, 문어체
  주제 : 무능한 사대부 계층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자각 촉구
  의의 : 실학사상을 배경으로 근대적 자각을 구체화한 작품이다.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였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쏘?'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허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망건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 인당 한 냥이지요."
"모두 아내가 있소?"
"없소."
"논밭이 있소?"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튼날,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백 냥도 못 지면서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허생의 말에 군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 장기라는 곳은 삼십만여 호나 되는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다.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하여라."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바다가 마르면 주어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
했다.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 했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은이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허 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튼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씨는 그 때부터 허
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 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들이 고갈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변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성,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반계 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변씨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에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니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이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대장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 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이 대장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 보내고,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辯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商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樊於期)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 대장은 놀라서 이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튼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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