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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횡설수설

아내는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 1997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by fermi 2003. 9. 6.




아내는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김창식 作

쑥국이 아직도 꽃무리를 떨구지 않고 있는데 무서리를 요 며칠 하얗게 뿌리더니 기어이 눈발이 쏟아집니다.  계곡으로 겨울이 들이닥쳤는가 봅니다. 소백산과 금수산 월악산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 줄기에 휘감긴 이곳은 봄과 가을이 비껴가는 소나기처럼 짧은 곳입니다. 추위에서 비껴나 봄인가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었고 서늘해진다 싶으면 겨우살이 준비를 재촉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산맥의 잔등을 타넘는 바람줄기가 가쁜 숨을 돌리는 잠깐 사이에 하얗게 서려 굳어서 봉우리마다 왕관처럼 덮이더니 흰 설탕가루같은 눈들이 점령구역을 확장하듯 계곡으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대청소를 하던 오후 무렵에는 제법 온화한 햇살이 내렸었는데, 청보리빛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오골계깃처럼 몰려온 것입니다. 학생들을 귀가시켜놓고 손바닥만한 분교운동장에 섰더니 빗방울 몇 개 투둑 떨구다가 쌀알같은 눈싸라기로 떨어져 바닥에 파르르 뒹글기 시작합니다. 첫눈의 전주곡이지요.
아내가 몹시 보고 싶은 순간입니다.
아- 첫눈이 온다고 말해주고 싶음의 들뜸일 겁니다. 아내는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교무실로 들어와 서울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내도 나처럼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갔다고 동료교사가 말을 해주어 집으로 전화를 했으나 집에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에도 첫눈이 오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첫눈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는 군요. 그래야 이따가 통화가 되면 이곳의 첫눈을 얘깃거리로 아내와 장시간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저녁짓는 연기가 잔뜩 낮아진 하늘 밑둥이로 달라붙자 눈싸라기가 금새 눈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성깔 난 시누이처럼 파르르 하던 눈싸라기가 부드런 눈꽃으로 승화되어 난분분 내려앉고 있습니다. 아내를 마음속에 생각함이 늘 그랬지만 오늘따라 보고픈 심정의 파편들이 저 무수한 눈발과 견줄만합니다.
학교는 텅 비었습니다.
학생들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산골이라서 눈이 오면 길이 끊기기가 일쑤였던지라 아이들조차 눈이 내리면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교사라야 전부 네명에 불과하지만 세명은 각자의 가족을 찾아 나섰고 이번 주말도 또 혼자입니다. 분교도 관공서라서 일요일에도 누군가 근무를 해야합니다만 그 일직은 아예 내몫이 돼버렸습니다. 교무실 난로에다 불을 지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작을 넣은 다음 석유를 조금 뿌린 후 성냥불을 그어대자 쐬쐬 살모사 혓바닥 떨림 소리를 지르며 장작에도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실내에 살모사 독같은 화기내가 퍼졌습니다. 조금 있으면 석유 냄새는 없어지고 장작이 괄게 타오를 것입니다.
아내도 이곳을 무척 좋아합니다.
좋아했었다고 말을 해야 옳을 것 같군요. 서울로 전출을 간지가 벌써 육년이 넘었으니까요. 이곳의 아름다운 산이며 골짜기며 남한강 물줄기를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지를 내가 판단하기에는 육년이란 시간의 강폭이 있으니까요. 사실, 덧붙이자면 아내는 서울로 간 후 이곳에 단 몇 차례 밖에 오지를 않았습니다. 아마 남편인 나를 찾아옴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점 혈육이던 내 어머니, 그러니까 아내에게로는 시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셨을 때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한 차례씩 왔다갔습니다. 설경과 물소리만으로도 더위를 잊는 이곳의 계곡을 해마다 두번 정도는 찾았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처음 왔을 때는 이곳에 매료되었다고 확신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분교이지만 당시에는 학년마다 한 학급씩 학생수가 올곳한 초등학교였습니다. 그러니까 교장과 교감이 있었고 교사들도 여섯명이나 되어, 소규모지만 교원조직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부임을 오신 선생님들은 전근해 온 아침에 의자에 앉으면서 전근갈 날짜를 꼽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골인 분교로 자청해서 온 선생님이 없었으니까요. 그러자니 신규발령이었습니다. 교장이나 교감도 승진을 해서 첫부임하는 자리였고 교사들도 교대의 뱃지구멍이 아물지도 않은 상태로 교단에 서는 곳이었습니다.
아내도 이곳이 신규였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유독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3월 정기인사를 앞두고도 눈이 잔뜩 내렸던 것 같습니다. 전근을 가는 두 분 선생님이 제대병사처럼 눈길을 헤집고 나간 이튿날 두 분의 선생님이 후임으로 오셨는데, 아- 쌓인 눈보다 더 고운 선남선녀 한쌍이었습니다. 생김새 준수한 총각선생님을 따라 온 선생님은 선녀였습니다. 두 분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나였습니다. 눈이 흔적을 없앤 길을 헤집으며 교육청에서 발령공문을 가져오는 것도 나의 임무 중 하나였니까요. 차성규선생님은 알오티시 출신으로 중위제대를 하고는 곧바로 부임을 해서인지 머리도 짧은 게 더 남자다웠습니다. 새까맣게 윤이나는 긴 머리를 치렁인 김유나 선생님과 어울리는 한쌍이었지요. 차성규는 이곳 지방 대학 출신었고 김유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여 부임을 하였기 때문에 그 두사람이 무슨 애인관계를 이미 맺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이 쌓여서 생각조차 하얗게 표백될 정도인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남녀는 알지 못했을 겁니다. 온 대지가 눈에 하얗게 덮여 있었으니까요. 그때는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혼돈도 조금은 있었을 겁니다.
라면이라도 하나 삶아야 할까 봅니다.
눈을 따라 내려오는 어둠도 하얗게 오는 듯 싶더니 그게 아니군요. 어둠이 눈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어둠에 빛의 형체가 완전히 잡아먹히기 전에 라면이라도 하나 삶아야 할 거 같습니다. 요즘에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저녁을 굶으면 속이 쓰려서 더한 불면에 시달리거든요. 특히 오늘같은 토요일에 선생들이 집으로 가버린 날에는 그 불면의 치료약이 없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중에 교무실에 나와 대화를 나눈다든가 소주를 함께 마실 대상이 없기 때문이죠. 벌겋게 달아 있는 난로에다 장작을 더 집어넣고 냄비를 올려놓으면 물은 금방 끓습니다. 물이 끓는 동안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밖에 쌓인 저 정도라면 첫눈이라고 말해주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아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아이 하나만이라도 있었다면 엄마가 없는 동안 아빠의 전화를 받아 줄 수 있을텐데.  
부부간에도 신분의 차이가 있을까요?
결혼하여 부부가 된 사이에도 결혼 전의 품위 같은 것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일까요. 물론 삼강오륜에 부부유별이란 덕목이 있기는 합니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품위란 남편과 부인간의 어떠한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뜻입니다. 궁합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별개이지요. 쉽게 말해, 지금 아내와 나 사이에 정박해 있는 그 장애물 같은 거 말입니다. 원시인들이 원숭이처럼 살 적에는 성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온달성과 같은 성곽은 왜 쌓았을까요. 당연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일 겁니다. 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전쟁에서 패하면 안되기 때문에, 승전국에 끌려가거나 아니면 속국이 되어 그들의 종놈이 되기가 싫어서 성곽을 쌓았을 겁니다. 신분이 비천해져 삶의 질이 형편없어지니까 성들을 그렇게 많이 쌓았을 겁니다. 그런 성곽이 나와 아내 사이에 생긴 거 같습니다.
이곳에서 영춘쪽으로 삼십분 정도 걸어가면 온달성이 있습니다.
늘 내안에 정박해 있는 그 장애물. 이끼까지 퍼렇게 살다가 거므테테하게 굳어버린 온달성벽이 요즘 들어 꿈속에서 까지 내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아차, 물이 너무 끓어서 라면을 넣기에는 부족한 양이 되었군요. 벌써 쓰려오는 속을 잠깐 더 방치해야겠군요. 남비에 물을 보충하면서 한모금 마시면 조금은 누그러지겠지요. 라면을 끓이는 과정에서도 나는 아내와 차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끓는 물에 라면을 넣고 3분 더 끓이면 먹을 수 있는 라면이 되기에는 마찬가지인데,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라면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상의 습관에서 조금씩은 달랐습니다. 물이 끓고 있습니다. 라면 봉지를 개봉해서 넣고 속에 들어 있던 스프를 넣습니다. 아내는 라면봉지와 스프 봉지를 가위로 곱게 자른 후, 남비에다 한 점의 흘림도 없이 차분히 넣습니다. 그런데 나는 라면봉지를 뜯지 않고 반으로 쪼개면 봉지는 저절로 뜯어지고, 스프도 가장자리를 찢어서 넣습니다. 그러자면 라면 부스러기나 스프알갱이들이 남비 밖에 흘려져 타는 냄새를 내고 말지요. 음식을 먹을 때도, 잠을 잘때도, 함께 외출을 했을 때도 이런 소소한 차이점을 나는 매번 발견했습니다.
남자이고 여자이니까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닙니다. 또 나는 충청북도 단양골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아내는 서울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차이점에 대한 곰곰스런 생각들이 도룡뇽 알처럼 우무질속에 갇혀서 또아리를 틀더니 한 마리의 도룡뇽으로 내안에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안의 성벽은 결국 내가 쌓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도룡뇽이 점점 커져서 화석로 굳어버린 모양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신분이 아내보다 미천하다는 울타리를 스스로 둘러버린거겠죠. 아내의 직업인 교사가 신분상으로 크게 높다고 치켜세우는 것이 아닙니다만 나 또한 교사인데 그렇게 울타리를 스스로 세우고 자괴감에 빠질 필요가 있느냐. 혹시 소심증이 심각한 거 아니냐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연유를 알게 된다면 이렇게 된 내게 약간은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나는 문화의 차이 즉, 살아 온 지역이 신분의 등급을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온 아이들에게 촌놈이라는 말을 쓰던 시절이 있었지요. 나는 그런 사람을 증오합니다. 촌놈, 상놈의 놈이라는 뉴앙스가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죠. 지금도 아마 그렇게 말을 하는 서울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피부가 검게 자랄 수 밖에 없는 시골사람이 촌놈이 되어야 한다면 서울놈은 덜 끄실러진 통닭같은 꼴이라고 말을 하겠습니다.
라면을 먹었더니 속쓰림이 나아졌습니다.
아내가 지금쯤 집에 들어 왔을까요.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려 쌓이고 있으니까요. 아내에게로의 전화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습니다. 초겨울 토요일의 저녁 밥숟가락을 홀로 입안에 밀어넣을 때의 어지러운 심정을 잘 아니까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을 낳았어야 하는 건데.
온달이 싸우다 죽은 온달성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래선지 군복도 입어보지 못한 내가 한스럽습니다. 중학교라도 졸업을 한 친구들은 육개월의 방위복이라도 입었지만 나는 제1국민역에서 곧바로 민방위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뭐 달린 게 부실하거나 신체에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내안의 정신을 들여다본다든가 가늠해내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지만 사상적으로도 나는 건전하였습니다. 자유민주국가인 이나라에 공산당이 발을 붙일 수는 없으며 또한, 침략으로부터 죽음을 무릅쓰고 이땅을 지켜야한다는 사상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외부로 매겨질 수 있는 등급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의 끓는 애국심과 건전한 사상은 무시되었습니다. 원통하게도 가방끈이 짧았던 거였지요.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군대를 부르짖어 배우지 못한 놈은 군대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못배운 놈이 좀 단순하다는 걸, 가방끈이 모자라는 놈이 비교적 무식해서 맹목적으로 용감해질 수 있다는 걸 박정희 대통령은 무시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에 처박히게 되더군요. 물려받은 땅뙈기 없을지라도 농투산이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었지요.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온달성을 찾아가곤 하였습니다. 나라를 위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온달이 장하기도 하였지만, 평강공주가 위대하다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학력이 대졸만 되었더라면 온달처럼 나라를 위해 살아야 겠다는 의지가 내안에도 소용돌이 쳤을겁니다. 사실,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각오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나라를 위해서라며 나팔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의 절반은 사기꾼에 가깝다는 것쯤은 농투산이도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눈을 외투처럼 덮어 쓴 저 산들이 어둠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전화기로 다가가면서 내다 본 밖은 마치 보름달이 뜬 밤과 같습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산들이 차례로 앉아서 미동도 않은 채 무언가에 대항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누군가가 산에게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서 산들이 무저항 비폭력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지러운 것들을 받아내며 어둠에 함락되지 않으려 몸부림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산은 위대한 해결사입니다. 고통의 누각을 지탱하는 주춧돌처럼 고요하게 앉은 자태로 어지럽게 춤추며 휩쓸려와 내려앉는 눈송이들을 받아내며 위대한 평정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덟시인데 아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이를 하나 낳았어야 하는 건데. 아내가 없을 때 수화기를 들어줄 아이가 없으니 아내의 아파트 불꺼진 방에서 울리는 벨소리가 이곳의 내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을 한지가 햇수로 십육년에 이르는데 아이가 없습니다. 남편인 내게 결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내가 석녀도 아닌데 우리는 아이가 없습니다. 유산을 시킨 적은 있습니다. 아이를 못난 것이 아니라 낳지 않은 것입니다.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서였지요.
담배가 생각납니다.
아내를 얻고서 끊은 담배입니다. 담배를 그만 피웠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말이 누님의 인자한 충고처럼 들렸습니다. 내 운명을 결정해주는 조물주의 계시로 받아들였지요. 그때는 아내가 나의 전부였으니까요. 갑자기 얻은 아내였습니다. 정말 갑자기였습니다. 순리가 아닌 것이었지요. 자연의 섭리도 우리의 결혼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옥황상제도 내려다 보시면서 어허, 저런 난데없는 인연도 있다고 무릎을 쳤을 것입니다. 이승에 관한 기록이 저승에 있다면 염라대왕도 어처구니 없는 인연 때문에 기록을 수정하였을 것입니다. 갑자기 얻은 금이라든가 보물들은 좀 탐욕의 뉘앙스를 갖고 있지만 갑자기 나의 여자가 된 아내를 뭐라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백산 쇠잔등에 올라 본 적이 있습니까? 구름이 하얗게 깃을 펼치면 오랜 실어증의 묵바위들이 얼굴을 부시는 소백산 천사백사십미터의 정상에 서 본적이 있습니까? 정상에 선채로 가장 낮은 곳에 선 겸허의 눈을 들어 하늘을 비껴본 적이 있는 가슴으로는 그 심정을 알겁니다.
롹카페에서, 홍등빛아래에서, 맥주나 양주를 꼴짝이던 흔적의 가슴으로는 그 심정을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가슴으로는 방자한 동정심밖에 없습니다. 방자한 동정심을 풀어놓고 돌아서면 비아냥을 푸푸 쏟아내고 말테니까요.
혹시 처가에 간 것은 아닐까요.
아내는 곧잘 집을 비웠는데 그때마다 처가에 있었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아홉시가 넘었는데 아내가 갈 곳이라곤 그곳밖에 없다는 확신이 산나리꽃대처럼 삐죽여 오르는군요. 처가에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일겁니다. 자식을 모두 키워서 여의살이 보내고 노부부가 해돋이에 시무룩하였다가 노을에는 젖은 활기를 찾는 그런 집안이지요. 맏딸인 아내를 내게로 시집보내고부터 노부부가 요양원같은 집살이를 한다고 처제는 서슴없이 말합니다. 아내는 처제가 철딱서니 없다고 힐난을 하였지만 헹여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자인합니다.
나를 사랑해 본 이력이 없이 시집을 왔음이 명백하니까요. 딸의 억지 시집을 보낸 부모 누구인들 억지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만. 나 역시 아내를 맞이하리라곤 꿈에도 가늠을 못했었습니다. 사고였습니다. 우발적이었지요. 즉흥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즉흥적이라는 단어로 접근을 시키니까 동물적인 냄새가 풍기는군요. 그렇다면 아내는 동물적인 사고를 당해서 나의 아내가 되었다는 귀결이 되는가요?  
입을 함구한 표정은 주변의 분위기를 제압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말하는 눈, 말을 담고 있는 눈. 하고픈 말의 첫음절부터 끝마침표까지 담가놓고 있는 호수와도 같은 눈. 감정이라는 망막에 잠겨있는 검은 동공, 그것이 눈빛의 참 의미가 아닐까요. 그 눈빛은 마음의 투영일겁니다.
아내의 흡뜬 눈. 아내가 가지고 있는 빛의 언어. 그 눈의 빛을 나는 아직 내안에서 지워내지 못합니다.
여름이었습니다. 방학을 했지만 단 여섯명의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서 학교에 남아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김유나 선생님은 집이 서울이었기 때문에 다른 교사들이 특별히 배려를 하였지요. 즉 방학의 중간이 아닌 맨 나중의 순번을 가위바위보나 사다리타기 등의 추첨이 없이 차지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처녀이고 이쁘기도 남과 다르고 발령 동기인 김선생님께 유난스럽게 친절하던 차성규 선생님이 앞장을 섯던 탓이었습니다. 김선생님은 차선생님께 매우 고마워 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흡사 혼인을 앞둔 연인같았습니다. 그들의 그런 꽃향내 나는 광경을 넘겨다 보는 나는 그들처럼 휴가를 가질 조금의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교사였지만 나는 그들의 교육활동에 심부름꾼인 소사였으니까요. 중학교를 중퇴하던 어린 소견에는 몰랐는데 스물이 넘어서자 직책이랄 것도 없는 소사라는 신분이 부끄러움을 풍기더군요. 김선생님과 차선생님이 오고부터 엇비슷한 동년배로서 그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내앞에 그들은 소백산 연화봉에 앉은 파랑새였습니다. 산의 정상인 연화봉보다 더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가진게지요.
겉으로는 아쉬워 하면서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학교에는 잡초가 키를 재는 빈 운동장과 얄궂은 소백산 달그림자만이 남았습니다. 매복병의 화살촉같은 매미소리가 고막을 째는 날들이 이어갔습니다.
방학이 뱀꼬리같이 기간의 폭을 오므릴 즈음에 전화가 왔습니다. 김유나 선생님이 내일부터 닷새간의 근무를 위해 서울에서 늦은 차를 탔다는 것입니다. 예전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남한강 강가의 큰 도로까지 나가 있으면 됩니다. 지나가는 막버스가 시커먼 계곡의 입구에다 그녀를 내려놓기 때문이었습니다. 넉넉잡아 아홉시면 도착하곤 하던 버스가 아직 오지 않고 있습니다. 달이 소백산을 제압하였던지 기슭에까지 그 부드런 살을 부비고 있었습니다. 강물줄기는 어둠속에서도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음울한 표정같기도 하였고 가늠해 볼 수 없는 미래같기도 하였습니다.
버스는 예정보다 한시간이나 늦은 열시에 잠깐 섰다가 곧 떠났습니다. 어둠에서 오토바이를 꺼내 시동을 걸자 그녀는 얼른 올라탔습니다. 산그림자가 얄궂게 웅크리고 앉아 무섬증이 뻗어나오는 계곡으로 접어들자 오토바이는 덜컹거리기 시작하고, 그녀는 내게다 몸을 잔뜩 붙여왔습니다. 그녀와의 몸부딪힘. 몽롱해지는 의식. 어둠과 빛과 하늘과 달과 나와 그녀와 산자락이 하나로 반죽이 되는 듯한 몽롱함. 다리를 건너려 약간의 커브를 돌다가 우리는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오토바이 바퀴는 자신의 땅을 잃고 허공에서 겉돌아가고 있었고, 그녀의 긴 머리칼이 문어발처럼 내얼굴을 거머쥐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녀와 한몸으로 뒤엉킨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린 묘목같은 몸이 내품에 올려져 있었으므로 두팔만 오므리면 그녀를 포박할 수 있었습니다. 오토바이의 쓰러짐과 어머나- 외마디 비명이 잇달은 아주 짧은 시간에 나는 마술에 걸린 듯 그녀를 꽉 안았습니다. 주춤 놀란 그녀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 그녀가 몸부림을 쳤지만 어린 묘목같은 몸으로는 어림이 없었습니다. 흠집없는 보름달이 내게 마술을 건 듯 나는 일을 치르고 말았습니다. 겁간이었습니다.
새벽이 알싸한 공기를 소리없이 몰고 왔습니다. 어제의 그 다리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꽁치배때기같은 논의 두렁에 걸터앉아 풀을 베고 있는 농부의 모습이 뿌우연 안개에 휩싸여 한없이 어질게만 보였습니다. 흙을 만지는 사람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요. 강건너에 드러나는 금수산 자락이 한폭의 그림같았습니다. 경사가 약간이라도 인정이 있다 싶은 산등짝이며 허리춤에 버짐같은 팔밭이 있고. 그 아래의 기슭에 올망졸망한 집들에서는 아침을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안개와 합류하고 있었습니다.
어제를 잊고 싶었습니다. 어찌 소사가 선생님에게 감히 그럴 수가 있습니까. 새벽공기를 폐부가 알알하도록 깊숙히 연거푸 들어마셨습니다. 강물에 가까이 섰습니다. 어제의 어둠속에서 본 강물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자태가 아니라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처럼 계곡을 깔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 강가에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 자리에 그저 발을 붙박고 말았습니다. 다가갈 수도 또 멀어질 수도 없는, 빈껍데기의 몸으로 서 있어야 했습니다. 새벽강가의 고요. 고요는 내게 등을 돌리고 강으로 앉은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자리에 붙박힌 이유는 심란의 소용돌이를 강에다 묻고 있는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그 순간의 나를 정리했습니다. 그녀의 고요를 보고 있는 동안 뇌리를 덮었던 액체가 하체로 적셔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액체는 나를 송두리째 하나로 묶어내리는 것이었지요. 액체가 발끝에서 나를 하나로 만들어버린 순간, 나의 의식이 송곳날을 허공에다 번득이면서 주술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아, 사랑의 정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억제와 체념의 둑으로는 그 출렁임을 결코 잠재울 수 없는 사랑의 정체--사랑.
얼마후,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습니다.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천천히 걸어가서 문득 바라본 그녀, 그녀의 흡뜬 눈. 아, 울음 가득한 그 눈. 나를 응시하다가 젖혀진 곳에는 새벽의 백색순결덩어리가 늘어진 버들가지에 자욱자욱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녀가 천천히 계곡의 안개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그녀가 강가에서 멀어지자 고요도 걷혔습니다. 연화봉을 넘은 햇덩이의 살이 좔좔 쏟아질때까지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서 하냥 강물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어젯밤 저지른 행위의 실체가 강물처럼 길게 누웠는데 어떻게 해볼 방도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후 두시 무렵부터 는개가 부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마구 떠들던 말들이 방향없이 날아 다니는 운동장에서는 천년 고분에서 숙성한 침묵이 모래알을 들추고, 그녀는 교무실에서 나는 서무실에서 회색덩어리로 굳어만 갔습니다. 어두워지면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빗줄기가 형벌처럼 이땅에 내리꽂히고 있었습니다. 소백산자락의 흔들리는 숲에서 날아온 바람이 가슴으로 휑한 소리를 냈습니다. 그녀는 교무실에서 나올 줄 몰랐습니다. 그녀가 화살을 겨냥하듯 응시하는 담벼락에는 푸른즙액 뚝뚝 떨구며 달겨드는 담쟁이가 형벌의 빗줄기에도 깨어 있었습니다. 그 담벼락 위 느릅나무 꼭대기에 푸둘푸둘 손짓하는 연두빛 새순같은 아- 살아있는 그리움, 그녀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내귓가에 너울거렸습니다.
벌써 열한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분교도 눈을 뒤집어쓰고 산의 한 자락이 되어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저물녁에 먹은 라면도, 난로 속의 장작도 그 기운이 사그러들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눈도 멈추었군요. 아내에게 전화를 할까 망설여집니다. 멈춘 눈을 아쉬워하면서 다이얼을 돌렸으나 수화기를 들어주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를 하나 낳았어야 하는데, 그 아이를---
그 아이. 우리의 아기. 시월이었습니다. 그 여름의 잔해들이 바닥에 버림을 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름 휴가에서 돌아 온 차성규 선생님 곁에서 그녀도 가을을 맞고 있었습니다. 내 가슴골에는 남한강 물줄같이 누워있는 그때의 그일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여름은 그 꼬리를 감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여름은 결코 잊어질 수 없는 하나의 실체였습니다. 그녀가 내게로 스스로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내게 들었습니다. 아이를 가졌다고. 그녀는 아이를 다섯쯤 낳았던 여자처럼 아주 침착했습니다. 아아, 어린 묘목같은 그녀가 그 엄청난 말을 아주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해요' 그녀가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한 싯점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아이에 대한 애착이었을까요?. 내게다 순결을 잃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나의 여자가 되었음으로 그녀 스스로가 정리하였습니다. 잉태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야 옳을 것 같군요.
그날, 2학년 아이가 십원짜리 동전을 천년의 보물처럼 아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땟국물이 꼬질꼬질한 손바닥에 앉힌 동전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생산이 되고 해를 넘기지 않은 동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길이길이 간직할 듯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몇 안되는 동급의 아이들이 굉장한 부러움으로 그 아이를 에워싸고 술렁였습니다. 그아이는 그 동전의 십원가치보다 몇 갑절 더 소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때 그아이에게 몰래 조소를 날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동전은 곧 보통의 십원짜리가 될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손에 올려진 동전의 광채에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빛의 그녀가 내 아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오 하느님.
그녀의 뜻을 좇아 소사직을 그만두었습니다.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그녀를 대하듯 그녀가 가져다 준 책에다 나의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이듬해 봄에 고입검정고시를, 가을에 대입검정고시를 패쓰하고 2년제 교대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아아, 나도 그녀처럼 선생님이 될 수 있다니.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앵돌아진 차성규가 내게 냉갈령을 부리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한동안 괴로워하는 모습은 참기어려웠습니다. 소사직을 그만 두던 날, 그녀는 나의 아이를 가진 내여자라고 차성규에게 말했습니다. 콘크리트벽에다 머리를 짓찧는 그의 등에다 그녀를 편안하게 해달라는 말을 던져놓고 학교를 떠나왔습니다. 교대에 합격을 통지받던 겨울, 우리는 이제 결혼을 할것이라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차성규는 돌아온 봄에 이곳을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요. 내가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을 받을때까지, 정식으로 혼인을 하기까지 우리의 떳떳하지 못한 관계를 4년여 동안 그녀는 숨기고 싶어 했으니까요. 나와 그녀를 맺어준 그 미완성의 생명체는 석달을 간신히 넘기고 우주에서 사라진게죠. 우리는 그 아이를 책임지지 못한거였죠. 나는 지금도 그 생명체에 머리숙여 참회합니다. 생명의 움틈이 완성되기도 전에 꺾여버렸다는 죄악때문입니다. 또 석달의 짧은 생명으로의 진행체가 운명의 계시를 내리고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4년의 유예를 명령하고 우리의 혼인을 계시한 것입니다. 그 못다핀 생명체에 머리숙여 참회하고 두손을 모은 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벽 두시가 넘었는데 토끼눈알처럼 또렷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난로에 장작을 넣는데 배고픔이 명치께를 참혹하게 후리는군요. 멈추었던 눈보라도 기가 올랐습니다. 불현 듯 솟아나는 생각처럼 유리창을 후르락후르락 때리고 있습니다. 눈에 훔씬 두들겨 맞은 유리가 푸르스름하게 멍이 든채 실내로 들어오려는 어둠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수신자를 찾아주지 못하는 전화기가 침묵덩어리를 뭉쳐 올려 놓고 내게 눈초리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는 안되는 시각이므로 그런 눈초리에 외려 내가 무안한 느낌입니다.
내가 심어주지 못하는 아내의 꿈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서울행을 예감했어야 했습니다. 바위짝에 숨어핀 들꽃 한줌에도 감동을 쉽게하는 아내의 맑은 가슴에 내가 범접하지못할 꿈이 있었던겁니다. 아내만의 자리에 돋아 있는 꿈의 실체를 가늠조차 못하는 나는 서울행에 조금의 이의도 제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서울로의 전출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 푸른 가로등이 있는 도시. 형광빛이 넘쳐나는 거실에나 어울리는 살갗을 가진 아내는 비로소 제집을 찾아든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떠난 빈 산자락으로 봄이 성큼 달려왔습니다. 눈녹는 산줄기가 오만하게 뻗지 않고 모나게 높지 않은 산. 유연하게 굽어서 이어지는 능선을 넘어왔습니다. 봄은 갑자기 나타난 이웃집의 처녀와도 같았습니다. 산등짝으로 창꽃이 볼연지를 찍어 바르듯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연초록잎이 까슬어졌던 대지 곳곳에 숨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러자 온 산하가 트인 숨구멍으로 쌔액쌔액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땅꽃 내음이 확확 번져왔습니다. 햇살이 좔좔 쏟아지면 그 빛을 먹는 함성들이 골짝마다 아우성였습니다.
그런데 창꽃이 어우러지고 새순들의 함성이 아우성인 온달성에 급격한 우울이 밀려왔습니다. 늘 정갈하게 비어 있는 콘크리트 농로에 지쳐 온달성에 오르면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그 침울과 무기력. 산중턱에서 장끼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을겁니다.
창꽃이 떨어지고 싸리꽃이 언덕으로 하얗게 어우러지는 오월에도 아내는 오지 않았습니다. 벌떼처럼 돋아났던 억새가 키재기로 우거진 숲에 숨어서 콘크리트 농로를 눈짓으로 자꾸 쓸었지만 마지막 행자는 어둠이었습니다.
단순히 서울로의 전출이 아니라 내 인생까지 송두리째 가져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내를 찾아 서울로 가면 모든게 사라질 것같은 예감이 마음을 가로질러 다녔습니다. 함께 한 우리의 삶을 실수로만 여기고 있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울로 가서 만난 아내의 빛의 언어에서 예감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나를 옥줴고 있었으니까요.
또 나를 질기게 구속해온 것은 변화에 대한 조바심이었습니다. 나의 아내가 되겠다고 선언을 한 순간에 생겨난 조바심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자연의 법칙이니까. 사람들은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 위안을 얻기도 하지요. 우리는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며 다가온 그녀를 찰라의 카메라셔터로 정지시키고 싶었습니다. 다가온 순간에 떠남이란 단어가 내안에 찍혔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와 아내를 둘러친 소백산자락 품안에서 변화를 거부한채 영원을 구가하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기척도 없이 다가서있을 변화에 대한 조바심을 품고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알전구를 겨드랑이에 끼고 높은 산을 오르듯, 풍만한 풍선을 물밑바닥에서 가지고 놀 듯 아내와 함께 살아온 나날이 끝을 맺은거였죠. 서울에 가면 변화의 폭이 악어입처럼 벌어져서 나를 삼켜버리겠지요. 그녀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내가 소백산 자락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요즈막에 깨닫고 있습니다. 산은 변화를 넉넉히 감내할 수 있기 때문에 자락의 옷깃에다 철따라 변화의 시늉만 내고 있음을 나는 잘압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화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를테면 감정, 느낌, 심정과 생각들이 외부로의 표현과 일치하지 않는 그런 삶의 단편들.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살고들 있다고 말들을 하지요. 하지만 나의 뇌리와 가슴과 시선이 늘 정박해 있는 소백산 산자락에 까지 층층히 퇴적된 그런 삶의 단편들을 감내하기에는 너무 버겁습니다. 내안의 심정을 간추리지 못했다는 응얼이 만져지는 오늘같은 밤에는 더욱 그렇습니다만 아내와 살아오는 동안에도 늘 그랬습니다. 보편의 부부들간에도 이런 경우가 물론 있겠지요. 하고 싶은 말을, 품었던 생각들을 상황의 여과없이 토로하며 살 수는 없겠지요.
혹,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녀가 이곳으로 자주 오지 않음으로 보아 분명 그녀는 부부라는 명목 때문에 내게 구속당하고 있음입니다. 나는 결코 그녀를 구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와 더불어 살고 싶을 뿐입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서울에 있은지 오래입니다. 아내의 일상생활마저 공유할 수 없는 남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와 나 사이에 들어찬 캄캄한 어둠을 걷어내는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야 하는데 그 스위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내와 나 사이에 무엇인가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같은 것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어느날에 어느곳에다 잃어버리고 생각의 중병에 걸린 도룡뇽처럼 둠벙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 산자락들이 내게 늘 와닿는 건 잃어버린 나에 대한 그리움도 있음이라는 것을 요즈막에 깨닫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산자락에 오르곤 합니다. 햇덩이 아직 덜 깬 저 산자락 속에는 잠이 든 동안 까막하게 잊은 듯한, 내게 아직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더운 김을 쌔액쌔액 뿜어내는 다박솔 곁가지에서 잃었던 나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면 가슴은 오를때보다 더한 무게를 감당해야 합니다. 수액맑은 오리나무에서 녹슨 못을 쑤욱 뽑아내듯 그리운 것들을 남겨두고 내려와도 가슴엔 어느새 벌건 녹물이 진창입니다.
어둠이 비칠비칠 밀려가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강쪽에서 달려오는 바람에 곤두박질하는 눈송이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떠오를때까지 잠깐의 잠을 청해야 겠습니다. 서로가 확신이 없는 사랑이라면 서로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확신할 수 없는 사랑이라면 서로를 할퀴고 가는 창밖의 칼바람과도 같은 관계일겁니다. 확신을 잡고 싶은 열망 때문에 잠깐의 잠도 이루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아내. 전화를 하기에는 너무 초췌한 아침이 부시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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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극장] <아내는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 방송 : 2002년 1월 4일 (금) 21시 55분 ~ 23시 05분

기획 : 정운현
연출 : 김진만
극본 : 오경희
출연 : 손현주, 고정민





시골 학교에서 소사일을 맡고있는 춘호는 새로 부임해온 여선생 유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멀리서 그녀를 바라만 봐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는 춘호. 가정방문을 나선 유나의 길을 안내해 주는 것만으로도 춘호는 행복감에 빠진다.

유나에게 선물받은 한권의 시집, 그 안에 적힌 '고마운 춘호씨께'라는 글귀를 바라보며 춘호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쁘고 행복하다. 유나와 그녀의 대학선배인 차성규 선생과의 다정한 모습을 목격한 춘호는 심한 질투감을 느끼지만, 소사라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유나에게 다가갈 수 없는 현실에 비참함만을 느낀다.

한편, 학교 비품실에서 시험지를 인쇄하고 있던 유나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고, 유나는 비품실에 갇혀 의식을 잃는다. 성규는 비품실에 유나가 있다는 걸 알지만 감당할 수 없는 불길에 주춤거리는 사이, 춘호가 거센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질식해 있는 유나를 구해낸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나를 구해낸 공이 모두 성규에게 돌아가고, 춘호는 억울한 심정을 아무에게 말도 못한 채 괴로워한다. 화재 사건 이후 급격히 가까워진 유나와 성규를 말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운 춘호. 하지만 유나를 향한 춘호의 애절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불길 속에서 자신을 구해낸 사람이 춘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유나, 그럼에도 성규를 사랑한다는 그녀의 고백에 춘호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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